북파공작 부대의 비극을 다룬 영화 <실미도>(2003)를 보육원(아동양육시설) 친구들과 보면서 “저 정도면 천국”이라고 웃던 소년이 있었다. 시설에서 그만큼 많이 맞고 굶으면서 자랐다. 소년은 자라서 ‘브라더스 키퍼’라는 사회적기업을 세웠다. 시설 퇴소생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만든 회사다. 브라더스 키퍼가 운영하는 벽면 녹화 업체 ‘브레스 키퍼’에서 일하는 시설 자립생 이요셉(26)씨는 3월15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여기가 천국”이라고 말했다.


‘고아라서 잘해주나?’ ‘고아라서 혼내나?’

김성민 브라더스 키퍼 대표는 엔지오(NG·비정부기구)에서 7년간 시설 퇴소생을 도왔다. 전국의 아동양육시설 200곳 이상을 직접 찾아갔다. 인연이 닿는 퇴소생이 늘어날수록 가슴 아픈 소식도 자주 듣게 됐다. 남자아이들은 교도소로, 여자아이들은 성매매 업소로…, 시설에서 나온 아이들의 삶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내렸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퇴소생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2017년 한 해 한 보육원 출신 퇴소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 사건도 있었다.


김 대표는 선한 의지를 가진 크리스천 기업을 찾아서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좋은 마음으로 자기를 받아준 회사를 석 달도 못 가 박차고 나오곤 했다. 회사에서 잘해주면 ‘고아라서 잘해주나?’ 혼내면 ‘고아라서 혼내나?’ 피해의식이 컸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시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기술이었다. 회사에서도 거짓말하는 습관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마음의 힘이 약한 아이들은 출근 시간을 지키고 일터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인내하는 일도 버거워했다.


결국 후원이나 취업 소개만으론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대표가 지난해 5월 창조원이라는 기업의 도움으로 건물 벽면에 식물을 키우는 벽면 녹화 회사를 차린 이유다.


브라더스 키퍼는 채용 과정부터 남다르다. 우대 사항이 ‘시설 퇴소생’이다. 이 조건만 갖추면 학력도 경력도 안 보고 뽑는다. 아직 회사 규모가 작은 탓에 일단 두 명을 채용하려 했는데, 세 명이 지원했다. 예산이 부족해 걱정하고 있을 때 김 대표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 월급을 주면 되잖아요.” 김 대표는 무릎을 쳤고, 자기 월급을 세 번째 직원에게 내줬다.


이 회사의 초봉은 인턴 기간 없이 월 200만원이다. 김 대표가 엔지오에서 일할 때 “200만원만 받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퇴소생들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200만원이 정말 아이들의 꿈이라면, 그 꿈을 내가 한번 이뤄주고 싶었다.” 다행히 회사 형편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김 대표도 “직원보다는 적지만” 집에 월급을 가져다줄 수 있게 됐다. 5월쯤 직원을 두 명 정도 더 채용할 계획이다. 사업 영역을 확장해 다양한 소질을 가진 퇴소생을 채용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회사의 신입 사원 교육 내용은 일반 회사와 완전히 다르다. 시설 퇴소생들의 경험이 일반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신입 사원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교육한다”고 했다. 업무에 필요한 직업 교육 외에 반찬 만들기, 독서 모임, 금융 등 일상생활 교육을 병행한다.


전문가가 되어 후배를 돕도록

부모에게 버림받고 시설에서 자라면서 받은 상처를 드러내 치유하는 훈련도 중시한다. 브라더스 키퍼의 목적은 시설 퇴소생들을 전문가로 만들어 후배 퇴소생을 돕는 인재로 키워내는 데 있다. 그래서 브라더스 키퍼에서는 ‘아동양육시설 경험’을 ‘특별한 경력’으로 인정해준다. 브라더스 키퍼에 와서야 비로소 ‘고아’ ‘보육원’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경험한 아이들은 서서히 자신의 상처를 꺼내 보여준다.


재정 훈련이 덜 돼 있어 돈을 마구 쓰는 직원도 있다. 브라더스 키퍼는 “사채는 쓰지 말라”며 이자를 받지 않고 긴급자금을 빌려준다. 1인당 700만원까지 빌려준 적도 있다. 사채나 각종 고소·고발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한 법률 지원도 해준다. 사소한 송사를 해결하지 못해 교도소 이력을 시작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브라더스 키퍼는 신입 직원들의 거짓말, 지각, 무단결근, 거친 언행도 포용해준다. 그런 이유로 직원을 해고한 적은 없다. 회사는 참아준다는데, 스스로 미안함을 견디지 못해 퇴사하는 경우가 있다. 김 대표가 말했다. “이 친구들은 오래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퇴사한 친구들이 돌아오면 무조건 받아줄 거예요.”


장윤수(24)씨는 김 대표와 두 선배의 ‘인내’로 브라더스 키퍼에 안착한 경우다. 장씨는 “‘주먹이 법’인 시설에서 워낙 많이 맞고 때리고 살아서인지, 누군가 말대꾸하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욱하는 성격을 아직 못 고쳤다”고 했다. 입사 뒤에도 “김 대표에게 앞뒤 안 가리고 막말을 한 적이 있다”며 부끄러워했다. “김 대표에게 거짓말한 게 있어서, 그걸 들킬까봐 더 욱했던 것 같다”는 자기반성이 이어졌다. 다른 회사라면 퇴사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지만, 김 대표는 화도 안 내고 장씨를 진정시켰다. “제정신이 든” 장씨는 곧 김 대표에게 사과했고, 지금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미담’이 됐다. 김 대표는 “일반 회사에서는 사정을 모르니 ‘나쁜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나는 ‘시설의 패턴’과 거기에서 비롯된 ‘퇴소생의 성향’을 아니까 받아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이요셉씨는 브라더스 키퍼에 입사한 지 1년이 됐다. “22살에 이력서를 쓰는데, 2년간 일곱 군데서 일했고 마트나 편의점 어디서도 두 달 이상 일한 적이 없었다”며 “브라더스 키퍼에서 일하기 시작한 25살부터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했다. 김효성(32)씨는 대안학교 행정실에서 4년 넘게 일하다 브라더스 키퍼에 합류했다. 김씨는 “어린 시절 상처를 받은 사람으로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브라더스 키퍼여서 더욱 마음을 담아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숙 여사가 관심 보였지만… “취약계층으로 인정해달라” 김성민 브라더스 키퍼 대표는 지난해 5월 청와대에서 김정숙 여사를 만났다. 장관이 참석하는 간담회라고 해서 갔더니, 김 여사가 특별히 시간을 내어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김 여사는 김 대표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보호 종료 청소년 문제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사회적기업 육성법의 ‘허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서는 사회적기업을 “취약계층에게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략)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 법 시행령에서 ‘아동양육시설 퇴소생’을 취약계층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취약계층인 시설 퇴소생을 법적으로도 취약계층으로 인정해, 퇴소생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활성화하자는 주문이었다.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김 여사는 보건복지부 쪽을 연결해줬다. 김 대표는 법률적 미비점이 해소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우리 부가 아니라 고용노동부 일”이라고 답변하곤 끝이었다. 김 대표는 보건복지부에서 고용노동부 담당자라도 연결해줄 줄 알았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글 전정윤 기자<한겨레21>